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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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06-27 21:04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오늘 우리는 6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음과 삶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구한 사건 뒤에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십자가의 길보다 영광의 자리, 섬김의 길보다 높아지는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니”(막 10:43-44).
세상은 힘이 강하고 권세가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지배합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압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높아지려는 자가 아니라 낮아져 섬기는 자가 참으로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자는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라고 하셨습니다. 인자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다니엘에서는 메시야를 인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다 7:13).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이유는 사명과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분의 목적은 만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시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대속물의 뜻은 “노예나 포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죄의 종이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특히 구약에서는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대속자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구약은 대속의 은혜를 미리 보여 줍니다.
“...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만나곤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건강의 문제는 우리의 수명에 위험을 가져옵니다. 관계의 문제는 마음을 무겁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인 죽음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죄는 영원한 형벌인 지옥불에 떨어져서 고통당하게 합니다. 죄는 어떠한 질병이나 사회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나 성공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의 값을 대신 치르는 것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러 모형과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실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속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값을 치루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본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드리는 믿음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이 희생된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리는 대신에 수양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성경은 아들을 대신하여 수양이 번제로 드렸음을 보여줍니다. 이삭이 죽어야 할 자리에서 수양이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할 곳에서 예수님께서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다가 탈출하여 자유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는 전날에 있었던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10번째 재앙으로 심판하실 때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을 심판할 때에 피가 있는 집을 넘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양의 피가 그 집의 문에 발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넘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양이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창에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아들이신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셔야 했는가요? 그 이유는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여 이미 죄인이 되었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종교를 만들어 의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행을 하거나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다양한 의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서는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룻기에서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로서 대속자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룻 3:13).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렸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기업도 팔려갈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되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때 보아스는 팔려갈 기업을 자신의 돈으로 사서 나오미에게 돌려주었고,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후손을 잇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이고 더 나아가 대속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보아스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이십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심을 본 후에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자신을 위하여 희생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희생하셨지만, 세상은 그 분을 거절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예수님을 거절하며 부인하며 도리어 조롱합니다.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마음이 참 빛 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죄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소돔성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두워지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만 곧 주의 날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죄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 곳에는 사람들을 미혹했던 마귀가 거짓 선지자들이 고통당하는 지옥입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의롭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야 한다고 잘못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 5:1).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졌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행실이 선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게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3.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 열심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와 개인 경건, 그리고 사역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려 놓으시고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누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려 놓아야 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입술에는 천국에서 천사들의 찬양과 같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는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천사들이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도 하더라”(계 5:12).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찬송하며 그 분께 우리의 전인적인 삶으로 영광돌리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삭 대신 수양이 죽었듯이,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 대신 피 흘렸듯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라면,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았지만, 그 구원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어진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배에 열심을 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오늘 우리는 6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음과 삶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구한 사건 뒤에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도 십자가의 길보다 영광의 자리, 섬김의 길보다 높아지는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니”(막 10:43-44).
세상은 힘이 강하고 권세가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지배합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압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높아지려는 자가 아니라 낮아져 섬기는 자가 참으로 큰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자는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라고 하셨습니다. 인자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다니엘에서는 메시야를 인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다 7:13).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는데 그 이유는 사명과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분의 목적은 만왕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섬김을 받으시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대속물의 뜻은 “노예나 포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죄의 종이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특히 구약에서는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대속자로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구약은 대속의 은혜를 미리 보여 줍니다.
“...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를 만나곤 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는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건강의 문제는 우리의 수명에 위험을 가져옵니다. 관계의 문제는 마음을 무겁게 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인 죽음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죄는 영원한 형벌인 지옥불에 떨어져서 고통당하게 합니다. 죄는 어떠한 질병이나 사회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나 성공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의 값을 대신 치르는 것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러 모형과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실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속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값을 치루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려고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을 본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드리는 믿음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이 희생된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손을 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리는 대신에 수양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창 22:13).
성경은 아들을 대신하여 수양이 번제로 드렸음을 보여줍니다. 이삭이 죽어야 할 자리에서 수양이 대신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할 곳에서 예수님께서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다가 탈출하여 자유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하는 전날에 있었던 사건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10번째 재앙으로 심판하실 때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을 심판할 때에 피가 있는 집을 넘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어린 양의 피가 그 집의 문에 발라졌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피가 있는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넘어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양이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창에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아들이신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셔야 했는가요? 그 이유는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여 이미 죄인이 되었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하여 다양한 종교를 만들어 의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행을 하거나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다양한 의식을 거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로서는 자신의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룻기에서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로서 대속자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룻 3:13).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렸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기업도 팔려갈 상황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되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때 보아스는 팔려갈 기업을 자신의 돈으로 사서 나오미에게 돌려주었고,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후손을 잇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이고 더 나아가 대속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보아스와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죄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죄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이십니다. 그 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심을 본 후에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이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피흘려 죽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은 자신을 위하여 희생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희생하셨지만, 세상은 그 분을 거절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예수님을 거절하며 부인하며 도리어 조롱합니다.
죄로 인하여 어두워진 마음이 참 빛 되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죄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소돔성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두워지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만 곧 주의 날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죄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 곳에는 사람들을 미혹했던 마귀가 거짓 선지자들이 고통당하는 지옥입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의롭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 믿음과 행위가 함께 가야 한다고 잘못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 5:1).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졌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행실이 선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는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게 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3. 대속의 은혜를 받은 자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 열심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배와 개인 경건, 그리고 사역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 내려 놓으시고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누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려 놓아야 한 것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은혜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입술에는 천국에서 천사들의 찬양과 같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는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 천사들이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도 하더라”(계 5:12).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을 찬송하며 그 분께 우리의 전인적인 삶으로 영광돌리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자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삭 대신 수양이 죽었듯이, 유월절 어린양이 이스라엘 대신 피 흘렸듯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못한 분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믿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라면,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았지만, 그 구원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주어진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배에 열심을 내고, 말씀에 순종하며, 선한 일에 힘쓰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