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주는 축복 (히 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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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26-05-09 16:50본문
순종이 주는 축복 (히 11:8-19).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민족을 세우셨고, 그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신 것처럼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은 믿음이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의 삶 속에서 나타난 믿음의 원리를 함께 나눈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라고 선포했듯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고,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한 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하나님의 부르심은 복의 근원이 되시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민족을 세우시고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믿음의 혈통과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여,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것이 아니냐.” (창 18:18)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를 통하여 강한 믿음의 나라를 세우시고, 더 나아가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열방이 주께 돌아와 구원받는 복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걸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 (창 12:4).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믿음이 있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장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것은 그 분의 섭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함께 협력하며 물질과 시간, 그리고 재능으로 헌신하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뜻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 분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그 분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서 그의 삶과 후손들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뻐하며 그 분의 말씀이 가져다 주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역사하심에 자신의 삶을 드리며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 11: 17).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장 깊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고, 기적으로 얻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후대를 이을 유일한 독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독자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삭과 사환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요? 그는 모리아 산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묶어야 했고, 칼을 들어야 했으며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며 이삭을 대신하여 드릴 수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원하셨던 것은 이삭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행하는 순종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으로 격려하십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였다 하니라.” (창 22:16-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에 아브라함이 큰 복을 얻게 되고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들이 생기며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소중한 것 까지도 아끼지 않는 마음이 믿음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에게 배우는 믿음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조금도 의심이 없었기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이라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순종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내려놓아야 할 ‘이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질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욕심이나 불순종의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순종의 길을 걸어가겼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날에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아들이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에 대하여 빌립보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믿음은 결국 순종입니다. 그리고 순종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시작합니다.
3. 순종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눅 11:28).
주님께서는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복된 삶이란 삶에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는 주님께서 어부들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소득이 없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순종합니다. “선생이며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5).
시몬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노력,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게 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의 순종은 그로 하여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게 합니다. 그물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은 주님 앞에 너무나 초라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들이 누렸던 축복들을 얻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렙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신 1:36). 갈렙의 순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밟고 얻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순종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찾아오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의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우리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육신의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매일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아중심적인 불순종의 삶을 날마다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고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되는 것이며 순종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베드로는 순종함으로 기적을 경험했으며, 갈렙은 순종함으로 약속의 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문이 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신뢰하느냐?”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경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민족을 세우셨고, 그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신 것처럼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은 믿음이 단순한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삶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라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의 삶 속에서 나타난 믿음의 원리를 함께 나눈고자 합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라고 선포했듯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작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고,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한 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2). 하나님의 부르심은 복의 근원이 되시도록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큰 민족을 세우시고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믿음의 혈통과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여,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것이 아니냐.” (창 18:18)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를 통하여 강한 믿음의 나라를 세우시고, 더 나아가 그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그의 후손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열방이 주께 돌아와 구원받는 복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걸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 (창 12:4).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믿음이 있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장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것은 그 분의 섭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 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함께 협력하며 물질과 시간, 그리고 재능으로 헌신하는 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며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뜻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 분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그 분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서 그의 삶과 후손들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기뻐하며 그 분의 말씀이 가져다 주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역사하심에 자신의 삶을 드리며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둘째,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 11: 17).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가장 깊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아들인가요? 이삭은 약속의 아들이고, 기적으로 얻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후대를 이을 유일한 독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독자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삭과 사환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요? 그는 모리아 산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묶어야 했고, 칼을 들어야 했으며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시며 이삭을 대신하여 드릴 수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원하셨던 것은 이삭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말로 증명되지 않고, 행하는 순종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으로 격려하십니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였다 하니라.” (창 22:16-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기에 아브라함이 큰 복을 얻게 되고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들이 생기며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한 만민이 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소중한 것 까지도 아끼지 않는 마음이 믿음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삭을 드리는 아브라함에게 배우는 믿음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신실함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조금도 의심이 없었기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이라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순종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내려놓아야 할 ‘이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질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욕심이나 불순종의 습관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진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순종의 길을 걸어가겼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날에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아들이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에 대하여 빌립보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믿음은 결국 순종입니다. 그리고 순종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시작합니다.
3. 순종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눅 11:28).
주님께서는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복된 삶이란 삶에서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는 주님께서 어부들이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부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소득이 없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주님의 말씀에 이렇게 순종합니다. “선생이며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5).
시몬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과 노력,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게 됩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의 순종은 그로 하여금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게 합니다. 그물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자신의 경험과 능력은 주님 앞에 너무나 초라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들이 누렸던 축복들을 얻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렙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신 1:36). 갈렙의 순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을 밟고 얻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순종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찾아오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순종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의 새 생명의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우리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육신의 유혹을 이기고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매일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아중심적인 불순종의 삶을 날마다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고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되는 것이며 순종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베드로는 순종함으로 기적을 경험했으며, 갈렙은 순종함으로 약속의 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문이 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신뢰하느냐?”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경험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