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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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6-07-04 16:18본문
무거운 짐을 주님께 내려놓아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1)
히브리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믿음의 경주를 무겁게 하는 “무거운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무거운 것이 반드시 죄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하고, 기도를 막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을 종종 마라톤 경주에 비유합니다. 마라톤 경주는 서둘러서 마칠 수 있는 경주가 아닙니다. 마라톤 경주는 인내로 마지막까지 달려가야 하는 경주입니다. 마라톤 경주자는 많은 짐을 가지고 달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최대한 자신을 가볍게 한 후에 경주에 임합니다. 여분의 옷을 입지도 않을 뿐더러, 최소한의 옷만을 착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생의 경주를 달려가기를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경주를 장애물과 혼란을 최소화한 후에 달려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경주를 무겁게 하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경주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라톤 선수와 같이 믿음의 경주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고비마다 인내하며 달려야 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고비가 있고 인내의 구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위하여 내려놓아야 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염려의 짐을 기도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잠 12:25)
염려는 영적인 성숙을 방해하는 감정적인 요소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경주를 늦추게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염려할수록, 우리의 믿음의 경주는 점점 더 느려지게 됩니다. 잠언 12장 25절은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근심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 경험이 있으십니까? 근심과 염려는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오래전에 마음에 큰 염려를 가지고 월출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쉽게 산을 올랐는데, 그날은 마음에 근심이 있어서 올라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산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큰 스트레스로 인해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근심으로 가득하여 무겁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분노로 인해 무거운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46편 10절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염려를 내려놓는 것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고 다스리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염려는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보다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에 염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문제와 염려를 모두 내려놓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다스리시고 해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왜 인생의 염려를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까? 우리의 염려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내려놓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염려는 우리의 힘을 소진시킵니다.
다윗은 시편 55편에서 “...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I'm worn out by my worri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걱정으로 인해 지치고 쇠약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많은 고민으로 인해 지치고 힘이 소진된 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일 때문에 지치기보다 고민 때문에 더 지치곤 합니다. 걱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염려는 결코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염려는 단지 우리의 힘을 빼앗아가고 우리를 지치게 할 뿐입니다.
2) 염려는 문제를 과장합니다.
시편 25편 17절은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라는 표현은 마음속 염려가 점점 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염려하기 시작하면, 그 염려는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말을 하면, 우리는 그것을 계속 생각하다가 염려하게 되고, 결국 마음이 온통 그 문제에 빼앗기게 됩니다. 염려는 비논리적인 생각의 형태입니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과장하고 크게 만듭니다. 염려 자체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3) 염려는 시간을 낭비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7절에서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입니다. 염려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우리의 힘과 생각과 감정을 낭비하게 하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염려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무런 유익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내려놓아야 할 염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내려놓아야 할 염려를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건강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직장이나 사업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재정이나 결혼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염려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염려를 적어보는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습관적으로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셔서 자신이 염려하는 목록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며 이렇게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더 이상 이것으로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것을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염려와 두려움과 나쁜 감정들을 큰 감정의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벗어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친구와 부모, 배우자와의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갈등의 원인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마음으로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염려와 나쁜 기억과 감정과 같은 쓰레기를 모두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상처와 잘못된 습관, 죄의식과 분노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을 오랜 인생의 여정 동안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사랑으로 지적해 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문제를 보게 하고,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적인 친구와 스승과 멘토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와 같은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목장과 같은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의 문제를 볼 수 있도록 사랑으로 권면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 55편 22절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염려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염려를 내려놓는 중요한 영적 길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염려할 수도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염려할수록 기도는 적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기도할수록 염려는 줄어들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길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제 우리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기도로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부터는 내가 가장 많이 염려하는 한 가지를 적고, 매일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모든 짐을 맡기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첫 번째 짐이라면,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내려놓아야 할 두 번째 짐은 상처입니다.
2. 상처의 짐을 용서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시 109:22)
우리가 말하는 상처는 육체적인 상처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처는 감정적인 상처, 곧 과거에 마음으로 받았던 상처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상처를 주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했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기대했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도 상처를 받습니다. 친구나 가족과의 갈등도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관계 속에서 들은 거친 말이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누군가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거절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아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가 가볍게 여겨진다고 느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외로움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처럼 상처를 주는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모든 상처를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쓰레기 봉투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더 이상 마음에 간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09편에서 “중심이 상함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이 깊이 상했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깊고, 치유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 놀다가 다쳤던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누군가의 말로 인해 받은 상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감정적인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하고 간직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그 일을 반복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함으로써 그 상처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거는 과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나를 계속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말한다면, 과거의 누군가가 현재의 나를 계속 조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주님께 맡김으로써 과거의 아픔이 오늘의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분노가 됩니다. 분노는 결국 자신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다시 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다시 상처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를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그 상처를 생각하고 묵상하면, 우리는 다시 자신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나를 계속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더 이상 우리의 믿음과 미래를 묶어 두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37편 8절은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분노와 쓴뿌리와 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하지 말고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상처의 기억을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더하는 일이며, 다시 그 상처를 경험하는 아픔을 겪게 하는 일입니다.
왜 우리는 염려뿐만 아니라 상처까지도 내려놓아야 합니까? 우리가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매여 있다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쓴뿌리와 분노는 백미러를 보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운전자는 곧 사고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분노에 매여 있다면 미래를 바르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아픔과 상처를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염려를 내려놓는 중요한 영적 길이 기도라면, 상처를 내려놓는 중요한 영적 길은 용서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때로 시간이 필요하고, 믿음의 공동체와 상담의 도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영적인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은 용서받을 가치가 없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분노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욥기 18장 4절은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분노가 결국 자신을 해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마음의 상처와 분노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처럼 우리는 모든 노함과 상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용서를 통하여 노함과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으로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7편 3절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의 길로 나아갈 때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십니다.
아직도 마음에 떠오르면 분노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당장 감정이 풀리지 않더라도, 주님께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염려를 내려놓아야 하고, 상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죄책감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3. 죄책감의 짐을 자백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
우리는 자신이 행한 잘못과 실수와 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과거에 행한 일로 인해 죄책감을 무겁게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죄책감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마음을 죄책감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가로막고,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더 이상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9장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집의 쓰레기를 매일 버립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집안에 쌓여 있으면 냄새가 온 집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하여 자신에게 있는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의 삶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 주님과 저 사이를 막고 있는 쓰레기와 같은 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날마다 이러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편 32편 3절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죄의식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결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내려놓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위로를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포츠에 몰입하거나 인터넷에 빠지거나, 다른 일에 몰두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로 자신의 죄의식을 잊고 덮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죄와 허물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기도가 염려를 내려놓는 길이고, 용서가 상처를 내려놓는 길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내려놓는 길은 자백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이 행한 것이 잘못이며 죄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책감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길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잘못된 것들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경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 경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와 상처와 죄책감에 묶인 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염려는 기도로 주님께 맡기고, 상처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용서의 길로 나아가며, 죄책감은 하나님 앞에 자백함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은 우리에게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주님이시며, 우리의 상처를 아시는 주님이시며, 우리의 염려를 맡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다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 12:1)
히브리서 12장 1절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믿음의 경주를 무겁게 하는 “무거운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무거운 것이 반드시 죄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하고, 기도를 막고,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을 종종 마라톤 경주에 비유합니다. 마라톤 경주는 서둘러서 마칠 수 있는 경주가 아닙니다. 마라톤 경주는 인내로 마지막까지 달려가야 하는 경주입니다. 마라톤 경주자는 많은 짐을 가지고 달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최대한 자신을 가볍게 한 후에 경주에 임합니다. 여분의 옷을 입지도 않을 뿐더러, 최소한의 옷만을 착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인생의 경주를 달려가기를 원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경주를 장애물과 혼란을 최소화한 후에 달려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경주를 무겁게 하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경주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라톤 선수와 같이 믿음의 경주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고비마다 인내하며 달려야 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고비가 있고 인내의 구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위하여 내려놓아야 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염려의 짐을 기도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잠 12:25)
염려는 영적인 성숙을 방해하는 감정적인 요소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경주를 늦추게 합니다. 우리가 더 많이 염려할수록, 우리의 믿음의 경주는 점점 더 느려지게 됩니다. 잠언 12장 25절은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근심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 경험이 있으십니까? 근심과 염려는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오래전에 마음에 큰 염려를 가지고 월출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쉽게 산을 올랐는데, 그날은 마음에 근심이 있어서 올라가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몸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에 산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리고 큰 스트레스로 인해 낙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이 근심으로 가득하여 무겁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걱정과 염려, 두려움과 분노로 인해 무거운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46편 10절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염려를 내려놓는 것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고 다스리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염려는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보다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입니다.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기에 염려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문제와 염려를 모두 내려놓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다스리시고 해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왜 인생의 염려를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까? 우리의 염려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염려를 내려놓아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염려는 우리의 힘을 소진시킵니다.
다윗은 시편 55편에서 “...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I'm worn out by my worrie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걱정으로 인해 지치고 쇠약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많은 고민으로 인해 지치고 힘이 소진된 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일 때문에 지치기보다 고민 때문에 더 지치곤 합니다. 걱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진시킵니다. 염려는 결코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염려는 단지 우리의 힘을 빼앗아가고 우리를 지치게 할 뿐입니다.
2) 염려는 문제를 과장합니다.
시편 25편 17절은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 내소서”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라는 표현은 마음속 염려가 점점 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염려하기 시작하면, 그 염려는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말을 하면, 우리는 그것을 계속 생각하다가 염려하게 되고, 결국 마음이 온통 그 문제에 빼앗기게 됩니다. 염려는 비논리적인 생각의 형태입니다. 염려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과장하고 크게 만듭니다. 염려 자체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3) 염려는 시간을 낭비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7절에서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입니다. 염려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우리의 힘과 생각과 감정을 낭비하게 하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염려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아무런 유익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내려놓아야 할 염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내려놓아야 할 염려를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건강의 문제일 수도 있고, 직장이나 사업의 문제일 수도 있으며, 재정이나 결혼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염려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염려를 적어보는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하게, 습관적으로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셔서 자신이 염려하는 목록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며 이렇게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더 이상 이것으로 염려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것을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염려와 두려움과 나쁜 감정들을 큰 감정의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벗어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친구와 부모, 배우자와의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갈등의 원인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를 마음으로 벗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염려와 나쁜 기억과 감정과 같은 쓰레기를 모두 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상처와 잘못된 습관, 죄의식과 분노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을 오랜 인생의 여정 동안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사랑으로 지적해 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문제를 보게 하고,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적인 친구와 스승과 멘토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와 같은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목장과 같은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의 문제를 볼 수 있도록 사랑으로 권면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믿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시편 55편 22절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염려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염려를 내려놓는 중요한 영적 길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염려할 수도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염려할수록 기도는 적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기도할수록 염려는 줄어들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길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제 우리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기도로 내려놓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새롭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부터는 내가 가장 많이 염려하는 한 가지를 적고, 매일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모든 짐을 맡기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염려가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첫 번째 짐이라면, 우리가 믿음의 경주에서 내려놓아야 할 두 번째 짐은 상처입니다.
2. 상처의 짐을 용서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시 109:22)
우리가 말하는 상처는 육체적인 상처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처는 감정적인 상처, 곧 과거에 마음으로 받았던 상처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상처를 주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했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습니다. 기대했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도 상처를 받습니다. 친구나 가족과의 갈등도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관계 속에서 들은 거친 말이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누군가의 배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거절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아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가 가볍게 여겨진다고 느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또한 외로움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이처럼 상처를 주는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모든 상처를 내려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는 쓰레기 봉투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더 이상 마음에 간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09편에서 “중심이 상함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이 깊이 상했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더 깊고, 치유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 놀다가 다쳤던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누군가의 말로 인해 받은 상처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감정적인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하고 간직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그 일을 반복해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함으로써 그 상처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거는 과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나를 계속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과거의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하고 말한다면, 과거의 누군가가 현재의 나를 계속 조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주님께 맡김으로써 과거의 아픔이 오늘의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하면 그것은 분노가 됩니다. 분노는 결국 자신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상처를 다시 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계속 떠올리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다시 상처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를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그 상처를 생각하고 묵상하면, 우리는 다시 자신에게 상처를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상처가 오늘의 나를 계속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더 이상 우리의 믿음과 미래를 묶어 두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37편 8절은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분노와 쓴뿌리와 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생각하지 말고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상처의 기억을 반복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더하는 일이며, 다시 그 상처를 경험하는 아픔을 겪게 하는 일입니다.
왜 우리는 염려뿐만 아니라 상처까지도 내려놓아야 합니까? 우리가 과거의 상처와 아픔에 매여 있다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쓴뿌리와 분노는 백미러를 보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운전자는 곧 사고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분노에 매여 있다면 미래를 바르게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아픔과 상처를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염려를 내려놓는 중요한 영적 길이 기도라면, 상처를 내려놓는 중요한 영적 길은 용서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때로 시간이 필요하고, 믿음의 공동체와 상담의 도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영적인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은 용서받을 가치가 없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분노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욥기 18장 4절은 “너 분하여 스스로 찢는 자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분노가 결국 자신을 해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마음의 상처와 분노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31-3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처럼 우리는 모든 노함과 상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용서를 통하여 노함과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용서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으로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7편 3절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용서의 길로 나아갈 때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십니다.
아직도 마음에 떠오르면 분노가 생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당장 감정이 풀리지 않더라도, 주님께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염려를 내려놓아야 하고, 상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죄책감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3. 죄책감의 짐을 자백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 59:2)
우리는 자신이 행한 잘못과 실수와 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과거에 행한 일로 인해 죄책감을 무겁게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죄책감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마음을 죄책감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를 가로막고,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십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더 이상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사야 59장은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집의 쓰레기를 매일 버립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집안에 쌓여 있으면 냄새가 온 집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하여 자신에게 있는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의 삶에서 잘못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 주님과 저 사이를 막고 있는 쓰레기와 같은 죄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날마다 이러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편 32편 3절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듭니다. 죄의식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결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내려놓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위로를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포츠에 몰입하거나 인터넷에 빠지거나, 다른 일에 몰두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알코올로 자신의 죄의식을 잊고 덮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죄와 허물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기도가 염려를 내려놓는 길이고, 용서가 상처를 내려놓는 길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내려놓는 길은 자백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이 행한 것이 잘못이며 죄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책감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길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잘못된 것들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경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는 경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와 상처와 죄책감에 묶인 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염려는 기도로 주님께 맡기고, 상처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용서의 길로 나아가며, 죄책감은 하나님 앞에 자백함으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은 우리에게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주님이시며, 우리의 상처를 아시는 주님이시며, 우리의 염려를 맡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다시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