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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서 배우는 욥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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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6-06-1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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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서 배우는 욥의 믿음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겨애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0-21).

오늘 우리는 고난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시련과 역경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련은 갑작스럽게 찾아와 삶을 무겁게 합니다. 노인이 수레를 끌고 언덕을 힘들게 오르듯이, 고난을 통과하는 사람은 무거운 짐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욥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자였습니다. 욥기 1장 1절은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이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경건하고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을 저울에 달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욥 6:2-3). 욥은 자신에게 다가온 환난을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겁게 자신을 억누른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7장에서는 자신의 살에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자신의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피부가 악창으로 인하여 고름이 생기고 구더기가 살을 파서 먹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욥 7:5).

욥기서가 주는 메시지는 고난을 이긴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입니다. 그리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욥기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고 의로우신가?” 우리가 고난을 만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앞에서, 마지막 까지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며 믿음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는 고난을 당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욥의 고난과 믿음이 주는 영적인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의로운 사람이라도 고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욥기를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의로운 사람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만날 때 본능적으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것일까?”

물론 성경은 죄 때 문에 오는 고난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처럼, 죄의 결과로 찾아오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고난이 특정한 죄의 결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욥기가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의인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죄를 숨기고 사는 그러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욥은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자녀들이 혹시라도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배반했을 까 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깨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물질로도 큰 복을 받았지만,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선행과 의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욥기 29장에서 욥은 가난한 자와 고아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욥 29:12). 그리고 그는 과부를 도와 기쁨을 주었고, 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를 도왔습니다.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욥 29:16). 욥은 가난한 자를 도와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고, 낯선 사람의 억울한 일을 살펴 주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했습니다. 

욥의 이러한 의로움과 선행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나를 보고 소년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방백들은 말을 참고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 귀가 들은즉 나를 위하여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위하여 증거하였었나니”(욥 29:8-11).

욥은 그 마을에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욥 앞에서 함부로 행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노인들은 일어나서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먼저 일어나 노인에게 존경을 표현해야 했지만, 욥의 인격과 의로움으로 인하여 도리어 노인들이 일어나 예를 표혔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이라도 욥 앞에서 함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와같이 욥은 정직했고 약한 자를 돌보는 의로움이 있었습니다.

욥은 이와같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도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2:3).

욥과 같은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난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욥기가 주는 교훈은 믿음이 있고 의롧게 산다고 해서 고난이 피해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삶에도 고난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이 버리셨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실 때에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에 자신을 자책하거나 정죄하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내가 기도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나?”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며 금보다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고난은 우리를 연단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금보다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가야 합니다.

2. 고난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욥기에서 배우는 두 번째 교훈은 고난의 이유를 찾기 보다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었고, 종들과 10명의 자녀를 하루 아침에 잃었습니다. 더 나아가 지신의 몸에 악창이 나는 질병으로 고통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기와 조각으로 자신의 가려운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이때 욥은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욥은 “나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0:2)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저를 정죄하지 마옵시고 먼저 왜 이러한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욥은 왜 하나님이 자신을 치시는지 묻는 것입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누구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병이 들면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왔을까?”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오면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기도했는데 응답이 늦으면 “하나님은 왜 침묵하실까?” 우리도 욥과 같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고난의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욥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욥에게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사단의 대화를 알지 못했고, 하나님이 욥을 그렇게 신뢰하고 사랑하시는 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진실한 믿음으로 그의 삶을 더욱 축복하시기 위한 고난이고 사단이 욥의 믿음을 시기하여 시험하는 것임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이유보다 더 소중한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욥이 의지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욥 38:4).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창조 세계를 보여 주셨습니다..

누가 땅의 기초를 놓았는지, 바다의 한계를 누가 정했는지, 새벽을 누구 명령하는지, 별등의 운행을 누가 다스리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바다를 다스릴 수 있느냐? 네가 아침에게 명령할 수 있느냐? 네가 별자리를 이끌 수 있느냐? 네가 비와 우박과 눈의 창고를 아느냐? 네가 들짐승들의 필요를 다 공급하느냐? 네가 세상의 모든 생명을 다 돌볼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질문을 통하여 욥에게 인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가 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한계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욥이 자기 인생의 고난에 갇혀 고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고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창조 세계를 다스리시고, 바다와 하늘과 별과 생명을 붙들고 계십니다. 인생의 고난앞에서 자신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고난을 이기는 비결인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닫게 됩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그동안 욥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인정하며 신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욥은 고난의 답을 얻는 대신에, 크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고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우리의 생각이나 길보다 높고 깊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사 55:8-9). 크시고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하여 해석하려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도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욥을 위로하기 보다는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도리어 욥에게 위로가 아닌 고통을 더했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하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욥을 정죄했습니다.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욥 4:7). 그는 죄 없이 사람이 망할 리 없다. 네가 이렇게 고난당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네 악이 크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욥 22:5). 엘리바스는 고통하는 욥 앞에서 네 악이 커서 고통당한다 라고 하며 욥을 정죄했습니다.

발닷은 하나님의 공의로 욥이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욥 8:4). 그는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도 죄 때문이라고 하며 욥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소발은 욥이 범한 죄보다 덜 벌을 받는 것이다 라고 하면 욥을 정죄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로 하여금 너의 죄를 잊게 하여 주셨음을 알라.”(욥 11:6). 소발은 고난 당하는 욥을 위로하기 보다는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세 사람은 욥의 고난을 보았지만, 욥을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잘못 적용했습니다. 그들은 고난 당하는 사람 앞에서 정답만 말하려 했고, 사랑과 공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욥의 친구로서 위로하러 왔다가 정죄자가 됨으로 도리어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욥의 친구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노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 42:7).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누군가가 아파하면 같이 아파하고, 누군가가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우리는 고난당하는 사람 앞에서 함께 울어 주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야 합니다.

3.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야 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욥은 고난 전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그러나 욥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난을 만났습니다. 그러한 고난에서 욥은 슬픔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배했습니다.

욥기 1장은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욥 1:20)라고 했습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와도 믿음의 근본인 예배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했던 것입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욥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물론 욥의 믿음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욥은 깊이 탄식하기도 하고 자기 생일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왜 이런 고난이 왔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어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욥 3:11). 그는 하나님을 떠나기 위하여 질문하거나 호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것입니다. 욥은 믿음의 소망을 붙들었기에 그는 하나님을 더우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욥은 고난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욥은 고난을 자신의 삶의 파멸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하신 후에는 자신이 정금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금은 불 속에 들어갈 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순수해집니다. 불은 금을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의 고난은 우리의 삶이 무너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정결하게 하고, 교만을 낮추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는 연단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지혜를 논하며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욥 28:28). 욥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악을 떠나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욥은 고난의 이유를 묻다가 고난 보다 크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기 38장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보여주시며 하나님 자신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창조의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땅의 기초를 놓으시고, 바다의 한계를 정하시고, 별들을 다스리시며, 모든 생명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욥은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욥은 전에도 하나님을 알았지만 이제는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전에는 지식으로 알던 하나님이었지만, 이제는 고난의 현장에서 자신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은 욥을 무너트리지 못했습니다. 고난은 도리어 욥이 하나님을 더 깊이 예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더 깊이 알아가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마침내 이 땅에 서실 것임을 고백하며 메시야의 통치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욥 19:25). 욥의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 속에서도 살아계신 구세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야는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았습니다. 욥이 바라보았던 대속자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야고보서는 욥이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복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욥은 고난 가운데 인내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렸습니다.

욥의 결망에 대하여 욥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욥 42:12-17).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에 더 큰 복을 주셔서 많은 재산과 더불어 아들 딸 열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이긴 후에도 백 사십년을 살면서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욥이 고난을 이긴 믿음은 고난의 이유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디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더욱 경외함을 배우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