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생명력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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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6-06-06 21:36본문
영혼의 생명력을 회복하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하나님이 창조하신 살아있는 피조물은 생명 즉 life 가 있습니다. 독수리는 생명이 있기에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생명이 있기에 바다를 헤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떠나면 독수리는 더 이상 날 수 없고, 물고기는 더 이상 바다를 누릴 수 없습니다. 생명이 사라지면 존재의 능력도 사라집니다. 아무리 정글의 왕인 사자라도 생명의 기운이 약해지거나 병들었다면 그늘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질 때 비로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단지 육체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로 인해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에 참된 생명력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참된 생명력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신약 성경은 생명을 여러 단어로 설명합니다. 그중 하나는 비오스입니다. 비오스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생활로서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라고 하셨을 때, 여기서 “이생”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 곧 육체의 삶과 생활을 가리킵니다.
또 하나는 프쉬케입니다. 프쉬케는 사람의 목숨과 영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목숨”이 프쉬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육체의 호흡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 전체와 영혼까지 포함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을 때의 생명은 조에입니다. 조에는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고, 요한복음 3장 16절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과 영생이 바로 조에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단지 오래 사는 생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생명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이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 끊어진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입니다. 이 조에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님의 가지로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가지가 날마다 포도나무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듯이, 주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듭난 성도는 주님이 주시는 생명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생명을 얻는 것은 복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교제 안에서 주님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영적 삶의 비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복음은 무엇인가요? 로마서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에 있습니다. 이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이란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과 같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가 구원을 받아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왜 우리는 조에의 생명이 필요한가요?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엡 4:18-19).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는 것은 종교나 선행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천사가 옥에 갇혀있던 사도들을 풀어 준 후에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행 5:20) 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복음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에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을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주신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아감을 믿습니다. 주님이 포도나무요 우리가 가지이듯이, 우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3-4).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생명안에 거하며 그 분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2. 말씀은 새 생명을 자라게 하는 양식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양식으로 생명력을 지켜갑니다. 사람이 수명을 다하게 되면 음식이 몸에서 더 이상 받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력이 강한 청년들은 어떠한 음식이라도 소화하며 잘 먹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주시며 ‘먹으라’ 고 하셨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떡과 포도주를 드셨습니다.
육체가 건강하기 위하여 양식을 섭취해야 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영적인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아무리 정글의 왕인 용맹스런 사자라도 음식을 먹지 못하면 기운이 약해지고 병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결국 생명의 기운이 다하여 병들게 되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먹지 않는 성도는 굶주린 사자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속사람은 점점 영적인 힘을 잃고 무기력해집니다.
우리의 생명이 생동감이 넘치고 살아있는 영적인 삶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셨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살리며 생명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들으며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조에의 생명에 생명력을 더하게 합니다. 강한 생명은 온갖 종류의 어두움의 유혹을 이기게 하며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회복시키는 비결이 어디에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으며 영원한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의 새생명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여 자라게 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자라가게 하는 것은 말씀을 마음으로 공급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영적인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무브라는 책에서 영적 성장에 대한 1,000 개 교회들을 설문하면서 그렉 호킨스는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성장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영적 훈련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다. 특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과 수요일의 말씀을 강해 설교를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깊이 연구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목장 모임에서는 선포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 지에 대한 나눔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나눔이 없는 목장 모임에서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통하여 단계별로 성경의 교리를 가르치며 말씀 안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에서는 풍성한 삶을 통해서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교회와 함께하며 말씀 중심의 삶은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3. 기도는 성령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호흡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14).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힘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열흘간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기도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아서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하듯이 생명의 능력을 공급하게 합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은 질식되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도 영적으로 호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구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회복하게 됩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왕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공중을 날 때 자기 날개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기류를 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높이 날 수 있고,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기류를 타고 높이 오르듯이, 기도하는 성도는 자기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생명의 능력을 위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시는지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전신갑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기도로 살아가야 함을 언급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기도가 없다면 영적 무기가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이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8-19).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깨어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영적인 능력은 기도하는 골방에서 흘러나오며, 교회가 성령으로 세워지는 역사는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헌신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4. 교제는 사랑 안에서 생명이 자라나게 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는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몸은 성도들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된 지체들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필요를 공급하시며 서로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사도들이 가르쳐준 말씀을 교훈으로 받아 마음에 새겼고, 그 말씀 안에서 교제를 이루어 갔습니다. 교제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눌 때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는 건물과 같이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교회의 지체들은 건물과 같이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교회로 세워지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의 연합을 이루어 교제를 하는 삶에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머리되신 주님으로부터 말씀과 성령의 공급하심으로 자라갑니다. 특히 우리가 자랄수 있는 환경은 공동체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자라간다고 했습니다.
왜 몸이 사랑 안에서 자라갈까요? 이는 하나님이 사랑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잃고 계속해서 교제를 멀리하면, 우리의 영혼은 쉽게 메마르고 약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자라가는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몸을 이루어 말씀과 사랑의 교제를 이루는 삶을 의미합니다. 목장은 교제와 친교의 장입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서로 교제하는 삶은 영적인 힘을 얻게 합니다. 생명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함으로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교제가 멀어질 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는 영적인 원리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생명을 얻은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양식을 먹어야 하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제 안에서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향한 사모함이 회복되고, 기도의 호흡이 회복되고,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교제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 사람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력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하나님이 창조하신 살아있는 피조물은 생명 즉 life 가 있습니다. 독수리는 생명이 있기에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생명이 있기에 바다를 헤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떠나면 독수리는 더 이상 날 수 없고, 물고기는 더 이상 바다를 누릴 수 없습니다. 생명이 사라지면 존재의 능력도 사라집니다. 아무리 정글의 왕인 사자라도 생명의 기운이 약해지거나 병들었다면 그늘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질 때 비로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단지 육체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로 인해 영혼을 가진 존재이며, 그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에 참된 생명력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참된 생명력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신약 성경은 생명을 여러 단어로 설명합니다. 그중 하나는 비오스입니다. 비오스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생활로서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라고 하셨을 때, 여기서 “이생”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 곧 육체의 삶과 생활을 가리킵니다.
또 하나는 프쉬케입니다. 프쉬케는 사람의 목숨과 영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목숨”이 프쉬케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육체의 호흡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재 전체와 영혼까지 포함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을 때의 생명은 조에입니다. 조에는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고, 요한복음 3장 16절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과 영생이 바로 조에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단지 오래 사는 생명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생명만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이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 끊어진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생명입니다. 이 조에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님의 가지로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가지가 날마다 포도나무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듯이, 주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듭난 성도는 주님이 주시는 생명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실 뿐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생명을 얻는 것은 복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고, 생명을 풍성히 누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말씀과 기도와 사랑의 교제 안에서 주님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영적 삶의 비결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복음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3-4).
복음은 무엇인가요? 로마서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에 있습니다. 이 복음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이란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과 같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가 구원을 받아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왜 우리는 조에의 생명이 필요한가요?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엡 4:18-19).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것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는 것은 종교나 선행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천사가 옥에 갇혀있던 사도들을 풀어 준 후에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행 5:20) 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복음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생명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에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을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주신 복음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이 땅에서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하여 살아감을 믿습니다. 주님이 포도나무요 우리가 가지이듯이, 우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3-4).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생명안에 거하며 그 분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2. 말씀은 새 생명을 자라게 하는 양식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하나님이 주신 생명은 양식으로 생명력을 지켜갑니다. 사람이 수명을 다하게 되면 음식이 몸에서 더 이상 받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력이 강한 청년들은 어떠한 음식이라도 소화하며 잘 먹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생선을 구워 주시며 ‘먹으라’ 고 하셨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떡과 포도주를 드셨습니다.
육체가 건강하기 위하여 양식을 섭취해야 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영적인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아무리 정글의 왕인 용맹스런 사자라도 음식을 먹지 못하면 기운이 약해지고 병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결국 생명의 기운이 다하여 병들게 되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초라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먹지 않는 성도는 굶주린 사자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속사람은 점점 영적인 힘을 잃고 무기력해집니다.
우리의 생명이 생동감이 넘치고 살아있는 영적인 삶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셨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살리며 생명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들으며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조에의 생명에 생명력을 더하게 합니다. 강한 생명은 온갖 종류의 어두움의 유혹을 이기게 하며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회복시키는 비결이 어디에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으며 영원한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의 새생명에 필요한 양분을 공급하여 자라게 합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벧전 2:2).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자라가게 하는 것은 말씀을 마음으로 공급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영적인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무브라는 책에서 영적 성장에 대한 1,000 개 교회들을 설문하면서 그렉 호킨스는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성장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영적 훈련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다. 특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과 수요일의 말씀을 강해 설교를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깊이 연구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목장 모임에서는 선포된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는 지에 대한 나눔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나눔이 없는 목장 모임에서는 영적 성장이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자훈련을 통하여 단계별로 성경의 교리를 가르치며 말씀 안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에서는 풍성한 삶을 통해서 경건의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교회와 함께하며 말씀 중심의 삶은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3. 기도는 성령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호흡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14).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힘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열흘간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기도는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아서 우리에게 산소를 공급하듯이 생명의 능력을 공급하게 합니다. 산소가 부족하면 사람은 질식되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도 영적으로 호흡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도우심을 구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회복하게 됩니다.
독수리는 하늘의 왕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공중을 날 때 자기 날개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기류를 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높이 날 수 있고,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기류를 타고 높이 오르듯이, 기도하는 성도는 자기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생명력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생명의 능력을 위하여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하시는지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전신갑주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기도로 살아가야 함을 언급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기도가 없다면 영적 무기가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이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엡 6:18-19).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깨어 기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개인의 영적인 능력은 기도하는 골방에서 흘러나오며, 교회가 성령으로 세워지는 역사는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헌신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4. 교제는 사랑 안에서 생명이 자라나게 합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2:42).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는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몸은 성도들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된 지체들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필요를 공급하시며 서로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사도들이 가르쳐준 말씀을 교훈으로 받아 마음에 새겼고, 그 말씀 안에서 교제를 이루어 갔습니다. 교제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눌 때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는 건물과 같이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0-22).
교회의 지체들은 건물과 같이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교회로 세워지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사랑의 연합을 이루어 교제를 하는 삶에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 4:15-16).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머리되신 주님으로부터 말씀과 성령의 공급하심으로 자라갑니다. 특히 우리가 자랄수 있는 환경은 공동체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자라간다고 했습니다.
왜 몸이 사랑 안에서 자라갈까요? 이는 하나님이 사랑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잃고 계속해서 교제를 멀리하면, 우리의 영혼은 쉽게 메마르고 약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자라가는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몸을 이루어 말씀과 사랑의 교제를 이루는 삶을 의미합니다. 목장은 교제와 친교의 장입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서로 교제하는 삶은 영적인 힘을 얻게 합니다. 생명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함으로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교제가 멀어질 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는 영적인 원리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생명을 얻은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양식을 먹어야 하고,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제 안에서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향한 사모함이 회복되고, 기도의 호흡이 회복되고,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교제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각 사람과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력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