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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닻, 예수 그리스도(히 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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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6-05-3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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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닻, 예수 그리스도(히 6:13-20)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9-20).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여정을 파도를 항해하는 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배가 항해를 하다 보면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배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닻(anchor)입니다. 닻은 배를 붙잡아 주고, 표류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닻이 없다면 배는 위험한 항해를 하고 있는 것이며, 언제든지 파선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닻은 태풍이 찾아오는 위기의 상황에 배를  지켜줄 안전 장치이기도 하기에 모든 배에는 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지켜줄 닻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닻을 돈에 두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닻을 성공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닻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닻이 흔들리면 인생 자체가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은 “내 인생의 닻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내 삶의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조화에는 무게 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게 중심은 배의 닻과 같이 흔들리지 않고 지켜 주는 힘입니다. 큰 나무의 무게 중심은 뿌리에 있습니다. 어떠한 태풍이나 비바람이나 가뭄을 견디게 하는 힘은 나무의 뿌리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건물이 견고하게 세워지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그것은 바로 건물을 지탱해 주는 기초공사에 있습니다. 건물이 높이 올라갈 수로고 그 기초는 튼튼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빌딩은 높이가 828 m나 됩니다. 그 거대한 건물이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그것은 바로 지표 50 m 아래까지 거대한 기초를 놓은 공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건물의 중심에는 거대한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대만에 가면 타이페이 101 건물이라는 거대한 빌딩이 있습니다. 대만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기에 높은 빌딩을 잘 건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큰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게 지켜주는 힘이 바로 건물의 내부에 있는 거대한 무게추에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무게추는 660톤의 거대한 황금색 쇠구슬로서 지진이 일어나면 건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합니다. 즉 건물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거대한 균형추인 것입니다.

타이페이 101의 무게추가 땅이 흔들리는 지진에서 건물의 중심을 잡아주듯이, 우리의 인생이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우리를 붙잡아 줄 무게추, 즉 인생의 닻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무게추, 또는 인생의 닻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의 인생의 닻은 바로 예수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사업의 부도로 재산이 눈독듯이 은행에서 사라질 때가 있고, 건강이 갑자기 위기를 만나 생명의 위기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시험으로 영적인 위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마음이 우울하고 의욕을 상실해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생의 무게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9).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게 세워진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이 영혼의 닻이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때에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3-15).

히브리서 6장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시련과 역경을 이겨 나갈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영혼의 닻이 되어 시련과 역경을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닻은 배를 한 곳에 고정시키는 도구로서,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쳐도 배가 떠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닻은 폭풍속의 안정을 의미했기에, 성도들의 삶에서도 인생의 거센 시련과 역경에서 붙들어 줄 수 있는 닻이 필요했습니다. 세상의 닻은 흔들리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두는 인생은 견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한 심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외부로는 핍박을 받아 재산을 빼앗기거나 사회적으로 배척당하기도 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믿음으로 인하여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가족이나 사회에서 쫓겨나기도 배척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유대교에 있을 때에는 화려한 성전을 의지하고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의복을 입은 제사장을 의지했고,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종교 체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어찌보면 다수가 따르는 유대교가 신앙심이 더 깊이 느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은 소수가 모여서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일이 마치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중 일부는 ‘차라리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을 향하여 믿음을 떠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으로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얻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소망이 주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히 6:13-14).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75세에 받았지만, 그는 25년이나 기다린 후에 100세에 이삭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삼은 아브라함을 향한 상급이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많은 시련과 역경과 유혹이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을 향하여 “너희도 아브라함처럼 기다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을 뿐 아니라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히 6:17). 하나님께서는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나타내시려고 맹세를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그 분이 피난처가 되시고 도피처가 되어 그 분께 피하는 자는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홀로 믿음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어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이 세상의 거친 풍랑을 헤치며 살아가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면 큰 위로를 받게 되며 안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영적으로 어둡고 유혹이 가득한 곳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재물을 삶의 닻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권세를 삶의 닻으로 삼고자 하거나, 쾌락을 닻으로 삼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 닻은 상황에 따라 교체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의존하는 닻은 견고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의존했던 닻이 그들에게 큰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닻인 삶의 무게 중심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의 삶을 지탱하는 영적인 뿌리가 무엇인가요? 인생의 폭풍우가 찾아올 때에 나를 지켜줄 닻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예수님을 향한 소망이 인생의 닻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19-20).


히브리서 기자는 소망이 영혼의 닻 같다고 했습니다. 그 닻은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간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9).

배는 태풍이 몰려오면 항구에 정착한 후에 닻을 내려 위험을 피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위기와 시련 앞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영혼의 닻입니다. 우리를 위기로부터 지켜줄 영혼의 닻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휘장 안에 먼저 들어가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 6:20). 예수님은 앞서 가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서 가신 의 의미는 항구 용어입니다. 즉 배가 항구에 직접 들어가기 어려울 때, 작은 배가 들어가 닻을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그 곳에서 우리를 위한 모든 약속을 성취하셨고, 그 약속을 이루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 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배의 닻은 바다에 깊이 내려지지만, 영혼의 닻은 하늘에 내려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함께 거하십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닻은 땅에 묶여 있습니다. 돈에 묶인 사람은 돈이 흔들리면 인생도 같이 무너집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닻을 내리면 관계가 흔들리면 삶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 계신 주님께 인생의 닻을 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며 반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흔들리거나 떠나더라도 먼저 천국에 가신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처소인 천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우리의 닻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폭풍 속에서 바다에 내려진 닻이 배를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가 소망의 닻을 굳건히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붙든 소망은 우리가 영원한 나라에 이르게 되면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의지할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약한 자의 힘이 되시고, 가난한 자에게 부유가 되시며, 병든 자의 치유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의 구원자가 되시며 방황하는 자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되시며, 미련한 자의 지혜가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구주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룻은 인생이 무너지고 빈손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인생의 닻으로 삼았습니다. 비록 그녀는 이방인이었지만 나오미로부터 믿음을 배웠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단했습니다. ”..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그녀의 고백은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기로 결단한 영혼의 닻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두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믿음의 결단은 그녀가 결코 후회하지 않는 위대한 인생을 만드는 전환이 되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나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갈대아 우르로부터 가나안 까지 아브라함을 따라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롯은 결혼도 하고 자녀도 생기며 자신의 재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재물이 주는 달콤한 유혹으로 인하여 하나님 보다 세상의 풍요를 더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브라함의 종들과 자신의 종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죄가 가득한 소돔을 선택하여 이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두었던 영혼의 닻을 거두고 세상의 풍요에 영혼의 닻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롯은 소돔성의 멸망과 함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소알의 동굴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AI 시대를 맞이하며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변화는 우리에게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영적으로 큰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옮기게 하는 유혹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3. 인생의 닻을 주님께 두기 위하여 닻줄을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것은 한 번의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서 주님과의 풍성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배가 바다에 닻을 내렸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선원들은 배와 닻을 연결하는 닻줄을 점검해야 합니다.

선원들은 닻과 연결된 닻줄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하고, 닻줄이 마모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아무리 닻이 바다에서 중심을 잡아 준다고 할지라도 닻줄이 끊어져 버리면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배는 닻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풍랑의 바람에 표류하거나 바위에 부딛혀 좌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닻이십니다. 문제는 닻이 아니라 닻과 연결된 우리의 영적 상태인 것입니다. 닻줄을 점검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주로 고백하지만 삶에서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기도가 멀어지고 말씀이 멀어지고 예배가 멀어지고 있다면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즉 닻줄이 마모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살피사 나를 아시며“(시 139:23)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하나님의 풍성한 말씀이 가득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닻줄은 한 순간에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마모되거 점검이 되지 않는다면 밧줄이 낡아서 무거운 닻을 감당하지 못하면 끊어지게 됩니다. 영적인 추락도 이와 같습니다. 어느 날 감자기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기도를 멈추다 보면 일주일이 멈추고, 한달이 멈추게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하루를 쉬다 보면 일주일이 쉬고 한달이 쉬다보면 말씀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다 보면 대신에 죄를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영적인 균열이 생기다가 댐이 무너지듯이 갑작스럽게 믿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선원은 폭풍이 다가 오기 전에 닻을 점검하고 닻줄을 점검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인생의 위기나 폭풍우가 찾아오기 전에 믿음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굳건히 해야 합니다. 인생의 풍랑을 이길만한 굳건한 믿음이 우리의 닻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닻을 내렸던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기도했고,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그들은 미리 하나님과의 굳건한 관계속에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인생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기에 위기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 26:3-4)라고 했습니다. 배가 폭풍우 속에서도 닻이 단단히 내려져 있으면 떠내려가지 않듯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을 때 세상의 불안과 염려 속에서도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께 닻을 내리고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과의 영적인 밧줄이 튼튼하고 견고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지요? 그리고 말씀과 기도에 대한 사모함이 나의 중심에 있는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교회와 함께 하며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가 세상에서의 삶은 열정적으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식어 진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표류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과의 닻을 견고히 연결하는 닻줄을 새롭게 함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닻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닻줄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기도와 말씀, 예배와 순종,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붙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도, 넘어질 때에도, 흔들릴 때에도,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휘장 안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내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우리의 닻이 세상이라면 방향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의 닻이 주님께 두어 주님과의 풍성함에서 세상의 거친 풍파를 이기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